INFJ가 접한 문화/책

사적 영역에는 자유가 없다.

무지개잠 2020. 3. 28. 01:35

파워 내향인인 저에게 너무 충격적이었던 문장입니다.

혼자 있는 게 최고로 안정되고 편안한데 박탈이라니??

 

우선 private라는 단어부터 살펴봅시다.

private의 어원은 라틴어 privo.

'박탈'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박탈당했다는 걸까요??

사적인 시간은 온전히 저만의 것 아니겠습니까?

 

독일의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인간의 최고 능력이자, 최상의 인간적인 것"

바로, 자유가 박탈당한 것이라고 봅니다.

 

"공적 영역 그 자체인 폴리스는 격렬히 고민하는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침투되며, 이곳에서는 누구나 항상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의 특성을 부각시켜야만 했고, 독특한 행위와 업적을 통하여 자신이 최고임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공적 영역은 개성을 위해 준비된 곳. 그것은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고 바꿀 수 없는 자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장소. 이런 기회를 잡기 위하여 그리고 기회 포착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조직체에 대한 애정으로 각 개인은 배심관, 방어, 공적 업무의 관리와 같은 부담을 기꺼이 맡으려 했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中

 

아렌트가 말하는 자유가 방구석에서 마음껏 춤출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죠.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능력, 지위, 외모, 아이디어 등등.

아무리 뛰어난 언변 솜씨가 있더라도 들어줄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아렌트의 자유

1. 자연적 욕구와 경제적 욕구로부터의 자유

- 사적 영역이란 가정 공동체를 지칭하며, 필요와 욕구의 동인에 의해 구성되는 자연적 공동체이다.

  공공의 장에 입장하는 시민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적 공간을 이미 구비한 사람들이다.

2. 다른 시민과의 평등한 관계 위에서 논의되는 자유

- 공공의 세계에서는 모두 원칙적으로 평등한 상태에 놓인다.

   평등한 상태에서만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고 공정한 경쟁 속에서만 자기의 숨겨진 가능성을 모두 발현할 수 있다.

3. 평등한 상태에서 타인과 경쟁하며 차이에의 열정을 마음껏 발휘하는 자유

경쟁자와 차별화된 아이디어 혹은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을 자유롭게 창안하는 자유

4. 공적 사안에 대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실현하는 자유

 

이렇게 뒤집어서 생각해보니 외향인들이 조금 이해되기도 합니다.

원래 나를 드러내는 것에 별로 관심도 없고 적극적이지 않았었는데, 앞으로는 나서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하나 뿐이니까요!

 

저번 경제적 인간 포스팅에서 인간은 원래 의존적인 존재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아 독립하는 것이 과제다 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렇게 독립한 자아를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공적인 장소인 것 같습니다.

 

아렌트의 공공성

1. 광장처럼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장

2. 필멸의 인간에게 허용된 불멸의 길

 

1번은 위에서 언급한 '아렌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하는 것일 테고.

2번 의미가 참 마음에 듭니다.

 

제가 포스팅을 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겁니다.

저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영구히 남기는 것.

 

제가 보려고 쓰는 것도 있지만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에서도 의외로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정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공간은 제 사적인 공간이자, 공적인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편한 마음으로 쓰는 일기, 또는 긴 메모 같지만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다녀가는 곳.(※아렌트의 정의에 따른다면 사적인 공간은 아님)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제 글이 당신에게 어떤 식으로든 닿았다는 뜻이겠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